올해 들어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의리와 헌신의 '맏형 리더십'이 재계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이건희 회장, 정몽구 회장 등 재계 2세 경영자들이 경영 전면에서 물러난 가운데 허창수 회장은 듬직한 '맏형'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보여주기 때문.
7일 재계 관계자는 "허창수 회장은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고 어려운 일은 묵묵히 해내는 뚝심이 있다"면서 "대부분 사람들은 빛나는 일을 하기 마련인데 허 회장은 평생 뒤치닥거리와 같은 일은 말끔하게 처리해줘 다른 리더들을 돕는 데 헌신과 희생을 해왔다. 매우 드문 리더십이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허창수 회장은 그간 재계에서 보여준 리더십은 기존 총수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화려하지 않지만 조용히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재계 선비'의 상징이다. '재계 신사'라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묵묵히 자신의 책임과 역할의 다하는 '재계 선비, 신사' 속에 듬직한 '맏형'의 풍모
지난 2005년 LG그룹에서 GS로 분가하기 이전까지 럭키금성그룹의 성장사는 허창수 회장을 중심으로 한 허씨 일가가 그룹의 내실을 다지는 회계, 경영지원 등 내조 역할을 조용하지만 완벽하게 해냈다.
1947년 LG와 GS의 모태인 럭키금성그룹이 창업한 이후 구씨와 허씨는 단 한번도 잡음이 없이 동업을 이어왔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유례가 찾기 힘들다. LG와 GS도 동업을 끝내고 분가할 때도 깔끔했다. 그 중심에 허창수 회장이 있었다.
지난 달 27일 허창수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또 다시 연임을 수락했다. 그간 '주홍글씨'가 씌워진 전경련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던 일반 대중들은 허창수 회장의 '희생'과 '의리'의 리더십을 목도하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허창수 회장은 이날 "이제는 우리 모두 머리를 맞대고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해 소통하며, 사회통합을 이뤄가야 할 때"라며 "전경련을 쇄신해 선진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어렵고 힘든 '고난의 길'이라도 책임의 무게를 피하지 않는 '맏형' 같은 리더의 모습이다.
이같은 재평가에는 허창수 회장이 전경련이 무려 다섯번 연속 '회장 공석' 위기를 넘기는데 자기 희생을 했기 때문이다. 마땅한 인물이 없고 모두 고사하는 상황에서 허 회장이 연속으로 맡을 수 밖에 없었던 것. 주변에서는 만류했지만 허 회장은 재계 '맏형'으로서 의리를 저버릴 수 없었다. 스스로 십자가나 다름없는 총대를 멘 것.
2011년 이래 모두 고사한 전경련 회장 떠맡고 5연속 추대 '헌신과 희생' 잔잔한 감동
게다가 허창수 회장은 전경련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이를 감수하고 리더로서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의 '뚝심과 의리'가 재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권 들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전경련이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전경련으로서는 시련이 따랐다. 전경련은 방북시 수행인사에서 배제를 비롯 청와대 행사에 초대받지도 못하는 등 곤혹을 치른 바 있다. 허창수 회장은 어쩌면 굴욕일 수 있는 전경련 회장 자리였지만 인내하고 감내했다.
허창수 회장이 전경련 회장은 처음 맡게 된 것은 2011년 3월이다. 전경련 33대 회장부터 37에 이르기까지 5번째 연임이다. 이번 연임으로 허창수 회장은 10년간 전경련 회장은 맡았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같은 기간이 된다.
지난 2011년 3월 허창수 회장이 처음 전경련 회장을 맡을 당시도 자기 희생이 컸다. 당시 전경현 회장직은 6개월 이상 공석이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모두가 고사했기 때문.
전경련 회장 고사는 김대중 정권 시절 전경련 회장직을 맡은 김우중 회장은 IMF 외환위기로 인해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된 이후 거부감이 그 원인이란 해석이 많다.
그 어려운 시기에 허창수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수락하자 역대 최다인 17명의 그룹 회장이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 모였다. 당시 재계 맏형인 이건희 회장을 비롯 정몽구 회장 등 1~2세대 그룹 회장들이 거의 다 모인 셈이다.
그 이후 이같은 자리는 없었다. 허창수 회장의 고군분투가 지금까지 이어졌던 것.
허창수 회장의 의리와 헌신의 '맏형 리더십'은 상가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구본무 LG 회장, 이헌조 LG전자 회장 등 장례 기간 내내 '맏형 의리'로 빈소 지켜
지난 5일 재계 '큰어른'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첫 날, 허창수 회장은 어김없이 장례식장을 찾아 선배 경영인에 대한 믿음과 함께 후배 경영인을 위로했다.
조문에는 최태원 SK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급 후배 경영인들이 줄을 이었다.
고인의 아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과 박지원 부회장 등이 조문을 받았다.
하지만 허창수 회장 만큼의 연륜과 무게감은 부족했다.
이같은 허창수 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GS 관계자는 "기업은 곧 사람이고 인재는 중요한 자산이라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다"며 "젊은 인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육성돼야 지역사회와 국가 경제의 밑거름을 마련한다"고 평소 강조한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5월, 구본무 LG 회장의 장례 기간 내내 고인의 빈소를 지킨 인물은 허창수 GS그룹 회장이었다.
허창수 회장은 LG그룹 창업 동지 가문인 허씨 일가의 맏형으로서 3일 내내 빈소를 찾아 상주인 당시 구광모 상무 등을 위로하며 조문객을 맞이해 의리를 보여줬다.
1948년생인 허창수 회장은 1945년생인 구본무 회장과는 세 살 터울이다. 두 사람 모두 고향이 경남 진주다.
허창수 회장은 구본무 회장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직후 발표한 추도문을 통해 “소탈한 모습으로 경제계를 솔선수범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어찌 이리도 황망히 가는가”라며 애통해 했을 정도다.
지난 2015년 12월, 이헌조 전 LG전자 회장이 영면했을 때도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끝까지 지킨 이는 허창수 GS 회장이었다.
"풍부한 실무경험의 소유자, 현장중심의 경영활동, 사회적 책임 실천 등에 있어 탁월"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빈소를 가장 먼저 찾았다. 허창수 회장은 이후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다시 빈소를 방문하는 일을 반복했다. 발인까지 참여해 고인을 배웅했다.
사흘장 내내 침통한 표정으로 고인과 안타까운 이별을 한 허창수 회장은 의리를 지켰다. 오너가도 아닌 이헌조 전 회장이지만 그룹 발전에 기여한 직장 상사였던 그에 대한 도리였던 것.
이밖에도 허창수 회장의 의리는 많은 일화가 있다. 암에 걸린 계열사 사장이 사표를 냈지만 이를 수리하지 않고 계속해서 사장 자리에 둔 적도 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더 빨리 몸이 쇠락할 것을 우려한 배려였다. 초기 베트남 사업의 어려움에 책임지고 물러난 사장에게 다시 기회를 주기도 했다. 처음 시장 도전이 힘들기 때문.
허창수 회장과 막역한 재계 관계자는 "허창수 회장은 풍부한 실무경험의 소유자, 현장중심의 경영활동, 사회적 책임 실천 등에 있어 탁월한 경영자"라면서 " ‘고객과 함께 내일을 꿈꾸며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창조한다’는 GS의 경영이념이 결국 허창수 회장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경제와 재계가 큰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지만 허창수 회장과 같은 '맏형 리더십' 역할이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도 더 빛나는 이유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