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페업계의 연말 플래너, 사은품 넘어 브랜드 로열티 높이는 도구로 활용
- 카페 브랜드별 연말경쟁 각축전···"플래너 포함 다양한 품목 등장할 것"
2020년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현재, 유통가는 연말 판촉전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스타벅스, 할리스커피, 투썸플레이스 등 카페 브랜드들은 저마다 자사 플래너 이벤트에 한창이다.
스타벅스는 올해로 18번째 플래너를 출시했다. 사은 이벤트 성격으로 작게 시작했던 프리퀀시 이벤트가 이제는 전 카페 브랜드의 연말 필수 행사로 자리잡았다. 스타벅스는 17년간 어떤 이벤트를 기획했을까.
◆ 그날
2003년 첫선···스타벅스 플래너가 시중에 나오기까지
2003년 12월 스타벅스는 60여개 매장에서 플래너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처음으로 펼쳤다. 당시 이벤트는 크지 않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아 이듬해인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플래너 이벤트를 준비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벅스가 연말 이벤트 아이템으로 플래너를 선택하게 된 것은 플래너가 1년 동안 꾸준히 사용하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일정을 기록할 때마다 스타벅스를 떠올릴 수 있어 유대감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스타벅스는 동봉된 쿠폰 등을 활용해 플래너를 소유한 고객이 매장을 재방문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마련했다.
연말에 진행되는 이벤트인 만큼 신년 달력, 플래너에 대한 니즈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스타벅스는 "플래너를 소지한 고객은 1년간 브랜드 친밀감을 형성하는 효과가 있어 고객과의 유대감을 이어주는 다리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매년 연말 '플래너 열풍'이 부는 것을 두고 스타벅스의 상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플래너의 가격(프리퀀시 이벤트를 활용하지 않고 플래너를 구매하는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데다가, 프리퀀시 이벤트를 활용한다 하더라도 플래너를 얻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 음료 구매 금액이 7만원 가량이나 되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의 플래너 가격은 연간 단위로 상승해왔다. 2014 플래너는 2만2000원에 구매할 수 있었지만 2015~2016 플래너는 2만7500원으로 5500원 올랐다. 이후 출시된 2017~2021 플래너의 가격은 3만2500원으로 이전 제품대비 5000원 올랐다. 스타벅스는 플래너를 얻기 위해 ▲이벤트음료 3잔과 ▲일반음료 14잔을 합쳐 총 17잔 구매를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가장 저렴한 시즌 음료(토피넛라떼 톨사이즈, 5800원) 및 일반음료(에스프레소, 3600원)를 구매할 경우 6만7800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스타벅스는 플래너 증정이벤트가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매장을 자주 찾는 단골손님에게 감사하기 위한 사은행사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강조한다.
관계자에 따르면 플래너 판매·증정 이벤트를 통해 생기는 수익은 미미한 수준이고, 매년 제작 관련비용은 증가추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스타벅스가 플래너 이벤트를 지속하는 것은 수익보다는 스타벅스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소비자들의 브랜드 충성도를 높인다는 점이 더 큰 장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단골손님들이 한달 평균 8번 정도 방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벤트기간이 2개월인 것을 고려해 프리퀀시 음료수를 17잔으로 정한 것"이라면서 "자주 매장을 찾아주시는 고객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담아 기획한 이벤트"라고 설명했다.
한편 플래너의 기획은 연초부터 시작된다. 플래너 전담 기획자가 플래너에 대한 고객의 반응을 리뷰하고 트렌드 분석, 사용 편리성 등을 고려해 회의가 시작된다. 기획회의에서 그해의 플래너에 어떤 메시지를 담을 것인지를 정한 뒤 아이디어 스케치를 시작한다. 스케치에 맞춰 재질, 디자인, 사이즈, 속지, 추가 구성품 등이 정해진다. 해당 콘셉트에 부합하는 협업 브랜드도 정해진다. 이후 여러 차례 검증을 거쳐 소비자들에게 제공되는 스타벅스 플래너가 제작된다.
◆ 그후
자체제작에서 몰스킨까지···갈수록 화려해지는 라인업
첫 선을 보였던 2003 플래너가 인기를 끌면서 스타벅스는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플래너 이벤트를 진행했다. 매년 해를 거듭하며 입소문을 타면서 스타벅스의 대표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초기 이벤트 상품은 스타벅스가 자체제작한 플래너들로 선보였다가 2014년 이후 몰스킨, 팬톤, 라미 등 문구류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고, 추가 구성품의 종류를 늘리는 등 프리퀀시 이벤트 스케일을 확대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2014년~2021년 중 2018년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몰스킨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제품을 선보였다. 몰스킨은 아날로그 감성과 스토리텔링을 결합해 다이어리·플래너·노트북 제품을 생산, 소비자들 사이에서 높은 선호를 가진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힌다. 몰스킨의 노트 제품들은 애호가들 사이에서 '텅 빈 자유' 또는 '창조적 활동을 통해 완성해나가는 책' 등의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업계는 스타벅스가 몰스킨과의 협업을 추진한 이유로 몰스킨이 추구하는 브랜드 감성과 스타벅스가 지향하는 방향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지난 2018년 글로벌 색채기업 '팬톤'과의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팬톤은 지난 2000년부터 '올해의 컬러'를 발표해왔다. 팬톤이 발표한 컬러는 그 해의 의류, 화장품, 인테리어 등 색을 이용하는 여러 산업분야에서 비중있게 다뤄진다. 당시 출시됐던 제품은 5종의 컬러로 구성된 플래너로, 일상 속 자연의 색감을 표현해냈다. 팬톤과의 협업에 대해 스타벅스는 "소비자 조사 결과 플래너의 색상을 중시한다는 의견이 많아 팬톤과의 협업을 진행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2019 플래너를 출시할 당시에는 이탈리아 브랜드 '10 꼬르소 꼬모'와 협업을 진행해 디자인 강화에 나섰다. 10 꼬르소 꼬모는 세계적인 갤러리스트이자 패션 저널리스트인 까를라 소짜니가 1990년 이탈리아 밀라노에 설립한 패션·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국내에서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수입하고 있다.
2020 플래너에는 독일 프리미엄 필기구 브랜드 '라미'와 손잡고 제품을 선보였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100% 제작된 펜을 증정품으로 내세웠다. 2021 플래너에는 패션브랜드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및 트립웨어 브랜드 로우로우와 손잡고 프리퀀시이벤트 증정품 가짓 수를 늘렸다. 소비자는 플래너 4종 및 크로스백 3종 중에서 원하는 제품을 선택해 수령할 수 있다. 플래너 옵션 중 하나인 노트키퍼(노트 분량이 많은 수첩)의 커버를 아르마니 익스체인지에서 사용하고 남은 원단으로 제작했다. 폴더블 크로스백 3종은 로우로우와 협업해 제작했다. 이 제품은 버려진 페트병을 활용한 재생원사로 만들어졌다.
스타벅스가 여러 유명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플래너를 제작하는 것은 스타벅스의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최근 소비자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신념과 취향을 표현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스타벅스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메시지를 플래너를 통해 소구하겠다는 방침이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각 사의 아이디어와 브랜드 신념이 더해져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면서 "뜻을 같이하는 좋은 브랜드들과의 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 그리고 앞으로
스타벅스가 쏘아올린 작은 공, 카페 업계 전반 강타
스타벅스의 플래너 증정이벤트가 매년 인기를 끌면서 투썸플레이스, 할리스커피, 이디야커피, 커피빈, 카페베네, 파스쿠찌, 탐앤탐스 등 국내 프랜차이즈 카페들도 연말 플래너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카페베네가 지난 2010 플래너를 출시한 뒤로 투썸, 할리스커피, 이디야, 커피빈 등은 2013년~2014년 즈음부터 매년 플래너 증정 이벤트를 진행한다.
2010년대 초반과 비교했을 때 현재 카페업계 내 연말 플래너 경쟁은 과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10년대 초중반 대부분의 카페 브랜드들은 자신의 브랜드 로고를 담은 플래너 제품을 단순 생산·증정하는 정도에 그쳤다면 2017년~2018년즈음에 접어들면서 협업제품이 다수 보인다. 수많은 플래너 사이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각 브랜드들은 다양한 개체와의 협업을 통해 차별화에 나서는 모양새다. 스타벅스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카페업계 전체의 필수이벤트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2017년 할리스커피는 편집샵 브랜드 '29CM'와 손잡고 2018 플래너를 출시했다. 투썸플레이스는 덴마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인 '디자인 레터스 앤 프렌즈'와 함께 제품을 제작했다. 배스킨라빈스는 몰스킨과 공동작업으로 파스텔톤의 플래너를 선보였다.
2018년 파스쿠찌는 일러스트 작가 '디어데이즈'와의 협업을 통해 일러스트 2019 플래너를 선보였다. 할리스커피는 라이프 브랜드 '데일리라이크'와 손잡고 일러스트 제품을 출시했다. 투썸플레이스는 모나미와 손잡고 다이어리 데일리키트를 내놨다.
2019년 할리스커피는 디즈니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캐릭터 2020 플래너를 선보였다. 투썸플레이스는 방탄소년단의 'BT21'을 그려넣은 플래너를 출시하면서 팬들의 선택을 잡았다. 엔제리너스는 스누피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해 스트리트 아티스트 '앙드레 사라이바'와 함께 한 작품을 출시했다. 카페베네는 캘리그래피 작가 굳세나와 '애국정신'을 주제로 한 플래너 세트를 제안했다. 파스쿠찌는 드로잉 아티스트 박규리 작가와 함께 2020 플래너를 내놨다.
카페업계들의 협업 플래너 상품 출시가 잇따르면서 올해의 플래너 경쟁도 치열할 전망이다. 할리스커피-해리포터, 파스쿠찌-디자인문구 브랜드 '루카랩', 탐앤탐스-디자인채널 '텐바이텐', 이디야커피-일러스트작가 '섭섭' 등 협업상품이 쏟아지면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업계는 당분간 플래너 경쟁은 심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플래너라는 아이템이 가진 특성상 1년간 플래너를 사용하는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각인·연상시킬 수 있어 마케팅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사은품으로 시작됐던 플래너가 이제는 그 이상의 마케팅 도구가 됐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카페브랜드는 제공하는 메뉴의 맛과 품질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에게 '어떤 이미지'를 주는지가 상당히 중요한 업종 중 하나"라면서 "사실상 현재는 카페업계의 연말 플래너 이벤트가 반필수가 된 상황이다. 스타벅스의 인기가 여전히 높은 가운데, 타 브랜드들이 이를 넘어설만큼 눈길이 가는 플래너 제품 기획에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분간 카페업계 내 연말 경쟁은 심화될 전망"이라며 "플래너로 촉발된 이벤트 경쟁이지만, 제공하는 사은품의 종류가 다각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플래너뿐만 아니라 다양한 '굿즈 경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효정 기자 market@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