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권 “금융위 눈치 보여…내부 검토 진행 중”
금융지주 계열 은행 3곳이 모두 가상화폐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발급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가 전멸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개정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라 실명계좌를 받은 기존 거래소도 오는 9월 실명계좌 발급 재계약을 맺기 위해서는 그 적격성에 대한 재평가를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공개적으로 가상화폐 제도권 진입 반대 의견을 밝힌 상황에서 시중은행이 당국의 압박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KB·하나·우리, 가상화폐 거래소 실명계좌 발급 없다…9월 무더기 폐쇄 현실화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금융지주 계열사 3곳은 가상화폐 거래소와 실명계좌 발급 등의 계약을 체결하지 않기로 확정했다.
가상화폐 거래소와 거래하면 계좌 확보, 수수료 등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보다 자금세탁·해킹 등 금융사고 위험 부담이 훨씬 더 크다는 판단에서다.
개정 특금법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가상자산 사업자들에도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부여한다. 따라서 유예기간이 끝나는 9월 말까지 은행으로부터 고객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입출금계좌를 받아야 그 이후 영업이 가능하다.
현재 신한은행은 코빗, NH농협은행은 빗썸과 코인원, 케이뱅크는 업비트와 제휴를 맺고 실명계좌를 연결해주고 있다.
하지만 다른 세 은행은 거래소의 신청을 아예 받지 않거나 까다로운 내부 기준을 설정해 실명계좌 발급을 거절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9월 이후 대부분의 가상화폐 거래소가 폐쇄될 가능성이 짙어졌다.
하나금융지주 관계자는 “현재 가상화폐 거래소를 믿고 안정적으로 거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 어렵다”며 “내부 회의에서 적어도 현재까진 가상화폐 거래소 실명계좌 발급이 시기상조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은행권 “금융위 눈치 보여…내부 검토 진행 중”
가상화폐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제공하던 기존 은행은 거래소와의 실명계좌 제휴 계약이 만료가 다가오면서 조만간 재계약을 맺어야 한다.
하지만 은성수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가상화폐의 제도권 진입을 반대하는 등 당국의 압박이 상당해 이를 외면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은 위원장은 지난달 국회에서 “(가상화폐는)실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이런 자산에 들어갔다고 정부가 다 보호해줘야 하는 건 아니다”라며 “(투자자들이 이 시장에)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부정적 견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위원장이 직접 나서 가상화폐에 대한 부정적 시그널을 보냈기 때문에 기존 은행들도 가상화폐 거래소와의 재계약을 검토하면서 상당한 부담감을 느낄 것”이라며 “결국 한국의 모든 가상화폐 거래소가 문을 닫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NH농협은행과 신한은행, 케이뱅크 등 3곳은 현재 기존 가상화폐 거래소와의 재계약 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세 은행 관계자는 모두 “현재 다방면에서 신중하게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며 “추가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미·중 연달아 규제 행보…한국도 영향 받을까
국제사회가 가상화폐 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정부와 은행권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 21일 방 류허 부총리 주재로 금융안정발전위원회 회의를 열고 “비트코인 채굴과 거래 행위를 타격함으로써 개인 위험이 사회 전체 영역으로 전이되는 것을 단호히 틀어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중앙정부가 2017년 가상화폐 신규 발행과 거래를 전면 금지한 것에 이어 비트코인 채굴도 금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앞서 미국 재무부도 1만달러 이상 모든 가상화폐 거래를 국세청에 보고하도록 조처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도 가상화폐와 관련 명확한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가상화폐를 직접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제도를 마련이 시급하다”며 “차라리 투자자들이 법적 제도 아래 안전하게 가상화폐를 거래하게 만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호연 기자 financi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