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수 논의는 반독점 논란이 장벽...제휴 등 통해 ARM 협력 강화 예상
-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1위 비전 위해 ARM 인수는 중요한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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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손정의(마사요시 손)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회동이 예정된 가운데 영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 'ARM' 인수합병(M&A)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진다.
두 사람은 1990년대 말 ARM 공동 인수를 추진한 이래 20여년간 인연이 이어지고 있어 ARM은 각별하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손정의 회장은 지난 1일 오후 3시 50분께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이재용 부회장과 ARM 관련 '빅딜' 등 협력방안 논의에 나선다.
손정의 회장은 1주일 가량 머물며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 주요 그룹 총수들과의 회동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9월 21일, 영국 및 중남미 방문 후 국내 귀국 현장에서 “손정의 회장이 서울에 오는데, 아마 그때 (ARM과 관련해) 무슨 제안을 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손정의 회장 측도 같은 날 “삼성과 ARM 간의 전략적 제휴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재용-손정의, 1900년대 말 ARM 공동 인수 추진 이후 수시로 만남 등 이어져
이재용 부회장과 손정의 회장의 인연은 20년이 넘었다. 삼성전자와 소프트뱅크는 1990년대 말 ARM 공동 인수를 공동으로 추진하면서 수시로 만나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결국 ARM이 맺어준 인연인 셈이다.
두 사람은 2013년과 2014년 잇달아 만났다. 이어 2016년 ARM을 인수 후 방한한 손정의 회장은 삼성 서초사옥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포괄적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2019년 방한 당시 손정의 회장은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 재계 총수들과 성북동 가구박물관에서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소프트뱅크는 2016년 314억달러(당시 약 36조원)에 ARM을 사들였다. 지분율은 소프트뱅크그룹이 75%, 소프트뱅크비전펀드가 25%다. ARM은 ‘스마트폰의 두뇌’로 불리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하고 있다.
손정의 회장은 2021년부터 이어진 저조한 투자 실적 여파로 막대한 손실에 이르자 ARM을 시장에 다시 내놨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지난해 3분기에만 1조6천70억 엔(약 16조원) 손실을 냈다. 지분 20.1%를 보유한 중국 자동차 공유업체 디디추싱의 주가 하락으로만 약 4조5천억원을 손해봤고, 1조원을 투자한 인공지능(AI) 안면 인식업체 센스타임도 미국 정부의 제재로 홍콩 상장이 지연되면서 손실 규모는 커졌다.
또한 소프트뱅크는 최근 잇따른 투자 실패로 올해 상반기에만 약 500억 달러(약 70조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소프트뱅크는 ARM 재매각으로 손실을 만회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미국의 그래픽처리장치(GPU) 1위 기업인 엔비디아가 2019년, 400억 달러(약 56조원)에 ARM을 단독 인수하려고 했지만 미국과 영국, 유럽연합(EU)의 규제 당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엔비디아가 ARM을 단독 인수할 경우 기존에 받던 로열티를 크게 올리거나, 경쟁사에는 ARM 설계도를 제공하지 않는 등 독과점 행위가 발생할 것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ARM 재매각은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독과점 규제에 막혀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소프트뱅크, 막대한 투자 손실 등으로 ARM 재매각 서둘러...기업공개 등도 추진
소프트뱅크그룹은 자금 확보 방안으로 매각 대신 기업공개(IPO)도 추진해왔지만 순탄치 않다. 소프트뱅크는 내년 3월 말까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영국 런던증권거래소 등에 ARM 상장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시장 불확실성이 커져 난관에 봉착했다. 영국 정부가 런던증권거래소 우선 상장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이재용 부회장과 손정의 회장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가 ARM을 단독 인수할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삼성전자가 공동인수를 할 경우에도 ARM에 대한 일부 지분만 확보돼 실질적인 설계 등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ARM의 고객사인 퀄컴·인텔 등과 복잡한 구도로 삼성전자의 실익이 적다는 것.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위 비전 달성을 위해 ARM 인수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120조원이 넘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자금력도 충분하다.
ARM의 기업 가치는 50조원에서 최대 1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ARM의 매출은 27억 달러(약 3조9천억원) 수준이다.
손정의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과 만남에서 ARM의 가치를 함께 키워 IPO로 가는 방향을 제안할 가능성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ARM의 일부 지분을 취득해 전략적 제휴 관계를 강화하는 방안도 예상된다"며 "삼성전자가 지난 2012년 네덜란드 반도체기업 ASML의 3% 지분을 확보한 사례처럼 경영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방식으로 장기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일각에선 손정의 회장이 이번 방한에서 최태원 회장 등 SK그룹 경영진과도 접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 3월 "ARM을 어느 한 기업이 독점하게 되면 반도체 생태계에서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ARM 인수합병을 위해 다른 기업과 공동으로 투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