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국방부·방사청 지원 위해 '방위사업계약법' 입법 추진...기재부, 반대로 좌초 위기
- 국방예산 점유율 해마다 하락...병사1인당 예산 美·日은 물론 中에도 열세
- "현행 국가계약법은 소액, 단기간 공공조달에 적합...방위사업은 고가, 대규모, 장기간 R&D 등 특성"
최근, 국제적인 관심 속에 대한민국 방위산업이 미증유의 수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는 170억 달러(약 22조원)의 수출 규모를 달성함으로써 사상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같은 성과에 주목하며 거듭 방위산업을 수출전략 산업으로 육성하자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잘 나가는 K-방산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여야가 초당적으로 힘을 모아 입법 발의한 ''방위사업계약 체결 및 이행 등에 관한 법률안(방위사업계약법)'에 대해 기획재정부(장관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반대의견을 제시하면서 대통령 발목잡기를 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지고 있어 우려된다.
기재부는 지금이라도 전향적으로 입법에 힘을 보태 방산이 국방과 국민경제에 함께 기여할 수 있도록 입장을 바꿔야 한다.
▲尹, 대선 출마 이후 지속적으로 방산 수출산업 육성 강조...올해 22조원 수출실적 올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출마 이후 지속적으로 방산 수출을 강조해왔다. 120대 국정과제에도 담겼고, 최근 수출전략회의에서도 거듭 방위산업을 수출전략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2020년까지 5조원을 넘어본 적이 없는 연간 방산수출 실적이 22조원을 기록한 것은 놀라운 성과다. 특히, 연간 방위력개선비(약 16조원)를 크게 웃도는 수치여서 방산이 돈을 써서 국방력을 강화하는 비용이 아니라, 돈을 벌어들여 국가경제발전에 도움을 주는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특별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일 제59회 무역의날에도 "폴란드와 124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방산 수출 계약을 성사시킴으로써 방산 수출 역대 최대 규모인 170억 달러를 달성했다"며 "이집트, 폴란드, 사우디 등에서 가능성과 잠재력을 확인한 방산 등을 우리의 새로운 수출 주력 산업으로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국회, 국방부·방사청 지원 위해 '방위사업계약법' 입법 추진...기재부, 반대로 좌초 위기
국방부(장관 이종섭)와 방위사업청(청장 엄동환)도 이같은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방산을 수출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는 목적에서 기존의 국가계약법에 기반한 방위사업법을 개선하고자 법률개선을 추진했다. 방위산업은 기존 국가계약법으로 묶기에는 차별화되는 특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같은 노력의 결실로 이헌승 국회 국방위원장이 발의하고 여야 국회의원 29명이 초당적으로 협력해 지난 10월 26일 '방위사업계약 체결 및 이행 등에 관한 법률안'이 접수돼 위원회 심사에 계류 중이다.
그런데, 최근 기획재정부가 이같은 입법이 국가계약 체계 형해화와 계약 기본 원칙을 훼손하고, 법 제정에 따른 실익이 없다는 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공무원의 공무원'이라 불리는 기재부가 양보하지 않는다면 입법이 좌초될 수도 있는 위기에 놓인 셈이다.
▲국방예산 점유율 해마다 하락...병사1인당 예산 美·日은 물론 中에도 열세
일반인들에게는 '방산비리'가 더 익숙하지만, 방산업계에 속내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비(非)전문가들이 방위산업의 혼란을 초래하고,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지난 9일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펴낸 '2022 세계방산시장 연감'에 따르면 세계 국방비 지출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2조 달러(약 2600조원)를 넘어섰다(2조1130억 달러).
스웨덴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세계 8위의 방산 수출실적을 올렸지만, 올해는 세계 최강인 미국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다.
반면, 국방예산과 방위력개선비는 감소하는 추세다. 특히, 정부재정대비 국방비 점유율은 지난 2017년 14.7%에서 해마다 낮아져 올해는 13%에 불과하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지난 2월 발간한 '더 밀리터리 밸런스(The Military Balance)'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병력 1인당 국방비는 8만4054 달러(약 1억1000만원)으로 미국(54만 달러), 일본(20만 달러)은 물론 중국(10만2000 달러)로 열세다.
이같은 상황에서 일궈낸 폴란드와 중동지역 방산수출 수주는 K-방산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국가전략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천재일우와 같은 디딤돌이며, 국제정세의 변화와 국내 방산기업들의 노력은 물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으로 만든 기회다.
K-방산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국방과 경제에 크게 기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방산계약법의 입법 취지다.
미국은 방산계약법 정도가 아니라, 해마다 의회가 국방수권법(NDAA)을 의결해 정부와 대통령에게 제출한다. 국방부가 요청한 예산보다 증액하는 경우도 흔할 뿐 아니라, 해외 군사지원예산까지 담는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하원은 내년 8170억 달러(약 1080조원)에 달하는 국방예산안(HR7776)을 찬성 350대 반대 80의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기재부는 마땅히 예산을 절감해 재정건전성을 높이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방산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면 예산이 필요한 경우에는 마중물 역할도 해야 하고, 투명성위주에서 전문성과 효율성의 균형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방위사업이 진행돼야 한다.
또한 법과 제도로 이를 지원하지 않으면 방산을 수출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바램은 공염불이 될 수도 있다.
▲"현행 국가계약법은 소액, 단기간 공공조달에 적합...방위사업은 고가, 대규모, 장기간 R&D 등 특성 있어"...방산업계 숙원, 입법 취지에 잘 담겨
방산업계에서는 이번 법률안에 오랜 고질병을 개선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숙원이 담겨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여야 국회의원들도 이번 법률안의 입법 취지를 통해 "국가안보 확립을 위해서는 자주 국방력이 필수적이며, 빠르게 진화하는 첨단 무기체계는 전장의 승패를 좌우하는 요인"이라며 "국가안보 확립을 위해서는 첨단무기체계 개발주체가 실패를 무릅쓰고 도전적으로 연구개발 하도록 유인하는 제도적 환경이 절실하나, 현행 제도 하에서는 과도한 지체상금, 입찰참가자격제한, 복잡한 분쟁절차 등 업체의 개발의욕을 저해하는 장애요인들이 산재해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현재 방위사업 계약에 적용되고 있는 국가계약법은 공사, 용역, 일반물자 구매 및 단순 제조계약 등에 적용하는 것을 기초로 한 법령이어서 소액, 단기간의 일반 공공조달에 적합한데, 방위사업 계약은 대부분 고가, 대규모, 장기 연구개발이면서 고도의 첨단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한 도전적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하도록 하는 특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처럼 방위사업계약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법 적용으로 인해 방위사업 계약 당사자들간 많은 갈등이 발생하고 있고, 첨단무기체계의 신속한 전력화에도 장애가 되고 있다"며 "첨단무기체계의 신속한 전력화를 뒷받침하는 도전적 연구개발 환경을 조성하고, 방산 업체의 국내외 경쟁력을 향상시켜 방위산업이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선도하는 첨단전략산업으로 육성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다.
최근 국내정세에서 여야가 이렇게 초당적으로 협력한 사례를 찾아보기도 드물다. 더구나 대통령까지 노심초사하고 있는 사안에 기재부가 기존의 관행을 고집하는 것은 '과이불개(허물이 있음을 알고도 고치지 않음)'의 우를 한번 더 추가하는 것일 수 있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은 K-방산을 수출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면 기재부가 이번 방위사업계약법을 전향적으로 재고해야 한다.
김의철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