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병화 연구원 "CF100 고집하면 제조업 전반 경쟁력 악화로 표출될 것"
기업의 DNA는 성장이다. 생존과 증식, 성장을 향한 기업 DNA의 투쟁은 오늘의 문명과 과학, 기술, 높은 삶의 질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기업 DNA가 지나치게 치열해 더러는 반사회적, 반인류적이어서 성장에 걸림돌이 되거나 인류를 위기에 빠트리는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했다. 이에 기업들은 무한성장 DNA에 신뢰와 책임의 강화를 모색한다. 그것은 환경적 건전성(Environment)과 사회적 책임(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바탕으로 지속가능발전을 추구하는 경영과 기업이다. 이에 <녹색경제신문>은 한국경제를 이끌어 가는 기업들이 어떻게 ‘ESG’를 준비하고, 무슨 고민을 하는지 시리즈로 심층 연재한다. <편집자 주(註)>
"RE100은 의미 있는 캠페인이나 우리 여건상 기업에 큰 부담이 되고, 무탄소 에너지 개념을 활용한 포괄적 접근을 통해 우리 현실에 맞는 정책과 제도를 검토하겠습니다."
지난 5월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CFE 포럼을 구성하고 출범식에서 CF100으로의 전환을 밝혔다.
CF100의 공식 명칭은 24/7 CFE로, CF100이란 24시간 일주일 내내 무탄소 에너지만 사용하자는 운동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기업 등이 CF100에 동참하고 있지만 이미 RE100에도 가입돼 있으며, 밸류체인 전반에서 탄소를 제로화하기 위해 CF100에 도전한 것이다.
반면, 재계의 입장은 산업부와 다른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기업들 중 매출 상위 500대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전국경제인합회(전경련)의 조사에서 82%가 CF100에 참여할 의향이 없다고 밝혔으며 반대의 이유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구체적인 이행 수단 불명'으로 확인됐다.
재계 관계자는 기자와의 취재에서 "국내 기업 30개사 이상이 가입한 RE100은 대한상공회의소 주도로 제도적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며 "그중 하나로 재생에너지 수요 공급 매칭 이외에도 PPA망 사용료 지원 사업 등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두 이니셔티브를 통해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은 새로운 무역 질서 하에서 우리 에너지 시장의 개편이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고, 이념적 이슈가 아닌 어디까지나 경제적 이슈이며, 단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비용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와 수용도 수반돼야 하는 이슈이기 때문에, 정부와 국회가 사회적 합의의 원만한 도출을 하루빨리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RE100이 부담되기 때문에 CF100을 달성하겠다는 산업부의 발표는 본질적으로 가치가 있는 대체제인지 의문이 남는다.
RE100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기업들이 100%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글로벌 이니셔티브다. RE100의 궁극적 목표는 에너지전환을 에너지 생산자인 발전사와 에너지 기업의 책임에만 맡겨둘 것을 넘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에너지 소비자인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변화를 촉구함으로써 탈 탄소화를 가속화하자는 것에 있다.
하지만 이번 정부가 국회에 보고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CF100에 주안점을 두고 원전을 대폭 확대하는 만큼,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감소시켰다.
2021년 NDC 상향 안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2030년 기준 재생에너지는 8.6% 감축된 반면 원전의 비중은 8.5% 상향됐다.
문제점은 또 있다.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안'에서 산업 부문은 2021년 목표 대비 온실가스를 800만톤(t) 더 배출하겠다는 기본안이 포함돼 있다.
특히, 석유화학 분야 감축량을 800만톤(t) 늘리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태양광 재생에너지 분야를 실질적으로 억제해 400만톤(t) 감축하겠다는 방안이 국회에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탄소중립위원장은 10일 <녹색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이러한 방식으로는 NDC 목표 달성 실패는 물론, 탄소국경조정제도와 RE100 등 국제질서가 새롭게 변화하는 가운데, 우리 기업과 국가는 경쟁력을 잃고 도태되고 말 것"이라며 "세계통상질서가 탄소국경제도(CBAM), RE100, ESG 등 새로운 무역 장벽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뒷걸음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RE100의 경우 최근 3년간 삼성전자 , SK하이닉스,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네이버, 카카오 등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하는 수많은 기업들이 RE100 가입을 선택했고, 이는 현재 선언적인 약속을 넘어 국제적인 규범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성환 더불어민주당(산자위) 의원은 기자와의 취재에서 "이번 정부는 RE100 대신에 원전을 포함하는 CF100을 국제 이니셔티브로 띄움으로써, 대응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애초에 RE100이 특정 국가 주도가 아닌, 민간의 자발적 캠페인으로 시작됐고, 성장해 왔다는 것을 감안할 때, 안타깝지만 국제사회에서 우리 정부의 CF100 판촉은 OECD 최하 수준의 재생에너지 보급률을 가리려는 민망한 변명 이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CF100 선택한 기업은 '시간단위 정보' 기재해야 하는 등 RE100 대비 달성 조건이 더 까다로워
현재 거시적 시장의 흐름을 보면 북미와 유럽은 거대한 시장을 무기 삼아 이미 RE100을 글로벌 표준으로 삼고 한국의 기업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제조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14.7%가 이미 글로벌 협력기업으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았다고 답했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특성상 RE100에 대응할 재생에너지가 부족하다는 현실은 우리 기업에 커다란 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수석연구원도 본지와의 취재에서 "삼성과 LG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의 계열사 공급마 현황 및 주요사 RE100 가입 여부만 보더라도 얼마나 RE100이 중요한지 알 수 있다"며 "전력수급계획만 따라도 연간 5GW 이상 설치돼야 하고, 국가 입찰 제도를 도입해서 자립 가능한 생산체제와 가격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한병화 수석연구원은 "재생에너지 확보가 부진하면 높아지는 그린 장벽에 경제 시스템이 파괴될 것"이라며 "유럽과 미국이 재생에너지 확보에 박차를 가하는 와중인데 CF100을 고집하면 이들 국가와 격차는 확대되고, 격차가 커질수록 탄소 감축과 관련된 다양한 무역 장벽에 노출도가 높아져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 악화로 표출될 것"이라고 했다.
본지의 취재를 종합해 보면 CF100을 선택한 기업은 신재생에너지를 직접 생산하지 못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공급인증서에 '시간단위 정보'를 기재해야 하는 등 RE100 선택 때 대비 달성 조건이 더 까다로워진다.
박지혜 플랜1.5 변호사는 "RE100 가입 기업 중 많은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이유로 '비용 절감'을 언급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에서 재생에너지의 발전원가가 화석연료 발전소와 동일하거나, 저렴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한국도 급증하는 재생에너지 수요를 효율적으로 맞춰 나갈 수 있도록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를 낮추기 위한 제도적 지원에 힘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CF100에 대한 요구에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렴한 재생에너지 확대는 효과적인 이행수단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 (IRA), EU 의 핵심원자재법 도입 등을 계기로 주요자원의 공급망 확보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미래폐자원 순환이용 활성화 포럼에서의 논의 결과와 향후 세부 분과별 논의를 통해 도출되는 제도 개선 방안 등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관련 입법과 정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고 강조했다.
최지훈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