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수요 둔화와 가격 하락 압박으로 매출도 우려스러워
-업계, 일시적 숨고르기일 뿐 중장기적으로 성장세 지속할 것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이 배터리 광물 가격 하락에 전기차 수요 둔화까지 더해져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일 <녹색경제신문>의 취재에 따르면 관련 업계에서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판가연동제를 적용하고 있어 광물 가격이 하락하면 수익성이 악화되고, 전기차 수요 둔화가 지속되면 향후 매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배터리 업계 전문가는 “글로벌 자동차 제작사들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전환하는데 속도를 내고있고, 2030년에서 2040년을 기점으로 내연기관차만 생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일부 자동차 제작사들은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 사실”이라며, “LG에너지솔루션은 한때 수주 물량을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수주가 쏟아진다는 말도 나왔고, LG에너지솔루션을 포함해 다른 배터리 제조사들도 중장기적인 수주 계약으로 당장은 문제가 없겠지만 전기차 수요 둔화가 지속되고 고객사들이 보수적으로 재고를 운영한다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라고 조심스럽게 입장을 밝혔다.
이어 “테슬라와 BYD를 주축으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자동차 제작사들이 가격 경쟁에 나서면서, 다른 자동차 제작사들이 전기차 할인 압박을 받고 있고 보급형 전기차 출시를 서두르고 있는 것 또한 배터리 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거기다 판가연동제로 인해 탄산 리튬, 수산화 리튬, 니켈 등의 원재료 가격이 계속해서 하락하면, 과거에 비싸게 산 원재료에 각종 비용을 더해 배터리를 만들어 싸게 팔아야하는 상황이 지속될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국내 배터리사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LG엔솔은 전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했고, 상위 10개의 자동차 제작사 중 9곳에 배터리는 공급하는 기록을 세웠다. 삼성SDI는 해외 진출에 소극적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프리미엄 배터리 ‘P5’로 상대적으로 높은 영업이익률을 달성해 고수익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SK온은 배터리 업계의 후발 주자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며 적자를 기록했지만, 북미 시장에 발빠르게 진출한 덕분에 AMPC 혜택을 받아 지난해 4분기에는 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 배터리사들에게 위기가 닥쳤다. 치솟던 광물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전기차 수요 또한 둔화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면서 차량 가격을 큰 폭으로 할인하거나, 보급형 전기차 출시를 확대하는 전략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국내 배터리사들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하락했고, 단기적인 회복보다는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배터리 업계의 수익성 악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원인 중 하나는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주요 광물 가격이 계속해서 하락한 것을 꼽을 수 있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니켈 가격은 지난해 1월 1톤당 3만 1200달러에서 올해 1월 1톤당 1만 6150달러로 떨어졌다. 재고량 또한 지난해 11월 4만 92톤에서 올해 1월 7만 68톤으로 가파르게 쌓이고 있다.
아울러 LME(London Metal Exchange)에 따르면 수산화리튬 가격은 지난해 2월 1톤당 7만 6200달러에서 올해 1월 1톤당 1만 4439달러로 급격하게 하락했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달 31일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리튬 가격 하락으로 리튬을 생산하는 업체 중 신생 업체들이나 소규모 업체들은 생산을 축소하거나 문을 닫는 경우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판가연동제를 시행하기 때문에 과거에 비싸게 구입한 광물로 만든 배터리를 현재 광물 가격에 연동해 싸게 판매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난 2022년 하반기에 판가연동제로 높은 수익을 기록했던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다만, 업계는 광물 가격이 하락할 때를 광물을 확보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배터리 업계에서는 전기차 수요 둔화와 전기차 가격 할인 압박에 직격탄을 맞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전기차 출시 초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 나섰던 자동차 제조사들은 공장 증설 및 신차 출시 계획을 늦추고 있다. 또, 배터리 제조사와 자동차 제조사 간에 합작사를 설립하려던 계획을 철회하거나 재검토 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배터리 공급이 부족했던 시기가 끝나고 재고가 쌓이면서 배터리 제조사들이 자동차 제조사들과의 계약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국내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수요가 둔화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하지만 우려할 정도라기보다는 숨고르기나 옥석가리기에 들어갔다고 보고 있다”며, “전기차 및 배터리 업계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부족하거나 필요한 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양적인 성장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탄탄하게 다져나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배터리사들은 초격차 기술력을 기반으로 전고체 개발 및 생산을 본격화하고 있고, 보급형 전기차 배터리에 탑재하기 위해 성능이 향상된 LFP 배터리 등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다”며, “전기차 수요 둔화와 광물 가격 하락에 이어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IRA 철회 가능성 등 일시적인 위기는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문제될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박시하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