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복현, 상법 개정 추진..."합리적 경영 판단땐 면책 제도화"
- 재계, 61.3% 우려...상장사 절반 "개정 땐 M&A 재검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넓혀도 기업의 경영 자율성은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자 재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상법상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하자는 것인데 결국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경영 판단을 할 경우 이사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주로 야권에서 주장했던 것이 최근에는 윤석열 정부 주요 인사들도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반면 재계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할 경우 소송 리스크로 기업 경영이 흔들릴 수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12일 자본시장연구원과 한국증권학회가 여의도 금융투자센터에서 공동 개최한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세미나에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쪼개기 상장'과 같이 전체 주주가 아닌 회사나 특정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례가 여전히 빈번하다"며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 및 주주의 이익 보호'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넓혀도 기업의 경영 자율성은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세미나는 정부의 상법 개정 의견 수렴을 위한 첫 행사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세미나'에 참석했다. [사진=금융감독원]](/news/photo/202406/315235_355550_5131.jpg)
이날 행동주의 펀드 대표로 참석한 변준호 안다자산운용 대표는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의 비례적 이익으로 확대 적용하고, 경영진의 보수를 주주가치 제고와 연계하는 등 이사회와 경영진의 대리인 의무 강화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상법 개정 이슈는 2022년 초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의 분리 상장으로 개인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보면서 처음 불거졌다. 대주주와 경영진의 그릇된 경영 판단으로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까지 확대하자고 가세했다.
최근에는 윤석열 정부 또한 상법 개정에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소액주주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언급한 데 이어 지난달엔 투자자 이익 보호를 위한 방안 마련을 요구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5월말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상법 개정안 검토에 나섰다. 정준호 민주당 의원은 상법상 이사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로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만회용 카드로 개인투자자들의 표심 잡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정부에서 그간 추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힘을 쓰지 못하자, 상법 개정을 통해 활로 찾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재계에서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할 경우 불필요한 '소송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다만 정부와의 대립각에는 조심스런 모습이다.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은 그 의미가 모호하고. 구체적 상황에서 이사 행위의 기준으로 작동하기도 어렵다"며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주에게 손해가 발생했다는 부분을 어떻게 판정할 것인지도 뚜렷하지 않아 (기업에) 소가 계속 제기될 것"이라며 "이는 민사상 손해배상에 이어 형사상 배임죄까지 연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상장 기업 15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61.3%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넓히면 '주주대표소송과 배임죄 처벌 등이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인수합병(M&A) 계획과 관련해 응답 기업의 52.9%는 이사의 충실 의무가 확대되면 재검토(44.4%)하거나 철회·취소(8.5%)하겠다고 답변했다.
관련 규정 또한 유례적 드물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의뢰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일본 호주 등 관련법에서는 '이사가 주주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규정은 두지 않고 있다.
이에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사의 충실 의무 범위 확대로 배임죄 등 형사적 이유가 되면서 경영 환경이 과도하게 위축될 수 있는 한국적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감안해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경영판단을 한 경우 민형사적으로 면책받을 수 있도록 '경영판단원칙'을 명시적으로 제도화하면 기업경영에도 큰 제약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성훈 코스닥협회 연구정책그룹장은 "제도의 실질적 정착을 위해 기업과 주주의 인식이 합치되는 것이 중요하며, 지배구조 개선 방안 마련시 중소기업 현실이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오는 26일 재계와 함께 기업지배구조 개선 세미나를 추가로 열 계획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한국경제인협회가 주관하고 금감원이 후원한다. 정부는 다음 달까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세부 개정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