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에너빌리티, 원전·SMR 앞세워 ‘건설사 빅리그’ 진입
[녹색경제신문 = 문홍주 기자] 국토교통부가 매년 7월 말 발표하는 시공능력평가 순위가 4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건설업계가 긴장 속에 재편을 준비하고 있다. 시공능력평가는 건설사의 실적과 경영 상태, 기술력, 신인도를 종합적으로 반영해 순위를 산정하며, 공공 발주뿐만 아니라 민간 시장에서도 입찰 경쟁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올해는 특히 1~10위권의 대형 건설사들조차 예년만큼의 안정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으로는 중견 건설사들이 지방사업 정리에 나서며 수익성을 회복하고, 해외사업 확대 및 기술력 제고를 통해 반전을 노리고 있어 순위 지형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주목해 볼 부분은 작년 14위에 오른 두산에너빌리티다. 최근 트럼프발 무역 분쟁 및 미국과 유럽의 디커플링(탈동조화) 강화 전망 등으로 유럽 각국의 원전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시공능력평가에 긍정적인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대형 건설사의 '불안한 10위권'... 미청구 공사비가 변수
지난해 발표된 2024년 기준 시공능력평가에서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DL이앤씨, GS건설,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SK에코플랜트, HDC현대산업개발 등이 상위 10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올해 순위 유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핵심 변수는 '미청구 공사비'다. 최근 10대 건설사의 미청구 공사비는 약 20조 원에 달하며, 3년 새 8조 원 가까이 증가했다. 자재비 상승과 프로젝트 지연, 분양 침체로 인해 시공이 완료됐음에도 불구하고 공사비를 청구하지 못한 사례가 누적된 결과다. 이는 곧 건설사의 유동성과 재무 건전성 악화로 이어진다.
현대건설과 DL이앤씨 등 일부 대형사는 고비용 정비사업 프로젝트에서 수익성 저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단기 실적 악화가 평가 지표에 반영될 경우, 순위 유지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HDC현대산업개발과 현대엔지니어링은 최근 공사현장 붕괴, 인명 사망사고 등으로 행정처분 및 검찰 수사가 예정되어 있다. 따라서 7월 시공능력평가에 이러한 내용이 곧바로 반영되지는 않더라도 결국 시간 문제일 뿐, 순위에 악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발 위기, 영국이 두산에너빌리티 주목하는 이유는?
이런 가운데 전통적인 주택·토목 중심 건설사들과는 다른 궤도로 성장하고 있는 기업이 두산에너빌리티다. 2024년 기준 시공능력평가에서 무려 28계단을 뛰어올라 14위를 기록한 두산에너빌리티는 대형 주택 브랜드 없이도 ‘기술력’과 ‘인프라 역량’만으로 빅리그에 진입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주목할 점은 SMR(소형모듈원자로)과 수소·풍력·복합화력 등 차세대 에너지 인프라 사업에서의 두각이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미국 뉴스케일 파워(NuScale Power)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SMR용 주요 기기(압력용기, 모듈, 증기발생기 등)를 제작한 실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카자흐스탄,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와의 협력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기술력은 곧 수주 실적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두산에너빌리티는 신한울 3·4호기 주설비 공사(약 3조 원), 카자흐스탄 복합화력 플랜트(1.4조 원) 등을 연이어 수주하며 시공능력평가액을 전년 대비 210% 이상 증가시켰다.
최근에는 영국이 한국의 SMR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국은 노후 원전이 많고, 신재생으로만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2030년대 중반까지 원전으로 전력의 약 25%를 공급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하지만 기존 파트너였던 프랑스(EDF), 일본(Hitachi)와의 협력은 잇따라 난항을 겪었다. 히타치는 2020년 와일파 원전 프로젝트에서 철수했고, 프랑스의 EPR 원전은 공사 지연과 예산 초과 문제 등으로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작년부터 영국정부가 한국 기업 및 원자력연구원과 여러차례 접촉을 가진 정황이 보였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한림원-영국왕립공학아카데미의 원자력 워크숍 개최 등을 통해 연구자와 산업계 차원의 협력을 강조하고 나섰다.
김종우 두산에너빌리티 상무(SMR 사업개발 총괄)도 이번 행사에 참여해 기조연설을 전하며 "장비 공급, 시공, 운영 및 해체, R&D 등 전 주기에 걸친 협력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업계에서는 두산에너빌리티의 급부상을 단기 이벤트가 아닌 중장기적 산업 구조 변화의 신호로 보고 있다. 전통적 주택사업이 미분양 리스크와 금융비용 상승에 직면해 있는 반면, 에너지 인프라 및 ESG 기반 프로젝트는 오히려 정책적 수혜와 수익성이 뒷받침되는 구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 전문가는 “두산에너빌리티는 건설사 중에서도 가장 분명한 미래 성장 테마를 가진 기업”이라며, “정부의 탈탄소·원전 수출 기조, SMR 시장의 본격 개화가 겹치는 시점에 평가 항목의 '기술력'과 '신인도'에서 매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SMR의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단기적인 순위 상승보다 중장기 기술력 유지와 수주 안정성 확보가 관건이라는 점도 함께 지적된다.
상위 20~40위권에 위치한 중견 건설사들 사이에서는 조용한 구조조정과 전략 수정을 통한 반격이 이뤄지고 있다. 코오롱글로벌, 한신공영, 동부건설, 효성중공업 등은 미분양 적체와 손실 위험이 큰 지방 주택사업 비중을 줄이고 있다. 일부는 실제로 지방 사업장의 시공권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대신 이들은 해외 인프라 프로젝트나 정부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시공 실적을 쌓고 있다. 이를 통해 수익성뿐 아니라 기술력과 신인도 항목에서 점수를 끌어올리려는 포석이다. 특히 중동, 동남아 시장에서의 교량, 항만, 수처리 플랜트 분야 수주가 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디지털·ESG 전략, 평가에 반영될까?
최근 몇 년간 주요 건설사들은 스마트 건설기술과 ESG 경영 강화를 주요 경영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다. 드론 측량, BIM(빌딩정보모델링), 디지털 트윈 등은 설계·시공의 효율성을 높이며 현장 리스크를 줄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이 시공능력평가 지표에 실질적으로 어떤 비중으로 반영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업계에서는 특히 환경과 안전 관련 기술 도입이 향후 신인도 항목에서 중요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선도 건설사들은 기술 투자와 함께 관련 인증 확보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순위에서 상위권의 대대적 재편보다는, 일부 대형사의 하락과 중견사의 상승이 맞물리며 '간격 좁히기' 양상이 나타날 것으로 봤다. 특히 5~15위권 사이에서는 시공실적과 수익성, 재무 지표 등에서 미세한 차이가 적지 않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눈에 띄는 급등보다는 예기치 못한 하락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는 해"라며, "과거보다 평가 지표가 복잡해지고 있는 만큼, 기술력, ESG 대응, 리스크 관리 등 다층적 전략이 요구되는 시기"라고 말했다.
시공능력평가 발표는 오는 7월 말 예정돼 있다. 앞으로 남은 4개월, 건설사들의 경영 전략과 수익 방어전이 올해 순위표를 결정지을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문홍주 기자 real@greened.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