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측 "2024년까지 비교 기간 늘린 것, 해명하라" 즉각 반발
- 대법원 상고심, 판결문 수정 따른 파기 가능성 여부 관심 고조
최태원 SK그룹 회장 측과 이혼소송 항소심 재판부가 언론을 두고 격돌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 일부 수정에도 "재산분할 비율에 영향이 없다"고 반박하자 최태원 회장 측은 "판결문 수정했는데 재산분할 왜 영향 없는지 해명하라"고 촉구했다.
대법원 상고심에서 경정으로 인해 재산 분할 금액이 크게 달라질 경우 항소심 판결을 파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태원-노소영 이혼 소송' 항소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는 18일 '17일자 판결경정(更正)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설명자료를 내고 "(1조3808억원 재산분할의 근거 중 하나인) 대한텔레콤(SK C&C의 전신) 주식 가격은 1998년 주당 1000원에서 재산분할 기준 시점인 올해 4월 주당 16만원인 SK 주식으로 변모했다"면서 "최태원 회장의 재임 기간인 26년 동안 160배 가치 상승이 이뤄진 것으로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해당 판결에 잘못된 계산이나 기재가 나중에 발견되어 이를 사후에 경정(수정)함으로써 번거롭게 해드린 점에 대하여 송구하게 생각한다"면서도 "구체적인 재산 분할비율 등엔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법원의 경정은 단순 계산 실수이며, 전체 판결의 취지는 변함이 없다는 주장이다.
앞서 최태원 회장 측은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치명적 오류'를 지적했다. 이에 재판부는 이날 대한텔레콤의 1998년 가치를 주당 100원으로 계산한 판결문 오류를 1000원으로 수정했다. 대한텔레콤은 현재 SK그룹 지배구조 정점인 SK㈜의 모태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판결문 과정에서 1994년 11월 최태원 회장 취득 당시 대한텔레콤 가치를 주당 8원,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 5월에는 주당 100원, SK C&C가 상장한 2009년 11월에는 주당 3만5650원으로 각각 계산했다.
재판부는 이날 "(대한텔레콤 주가에 대한 판결문 수정은)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혼인한 1988년부터 2024년 4월까지 최종현 선대회장에서 최태원 회장에게로 계속 이어지는 중간 단계의 사실 관계에 대한 계산 착오를 수정한 것"이라며 "이는 최종적인 재산분할 기준시점인 올해 4월 기준 SK 주식 가격인 16만원이나 최태원 회장,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구체적 재산 분할 비율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2009년 11월 3만5650원은 중간 단계의 가치로 최종적인 비교 대상이나 기준 가격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판결문 수정에도 노태우 전 대통령 등 노소영 관장 측이 SK그룹의 성장에 무형적 기여를 했다는 판단은 그대로 유지"되며 "이를 토대로 한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재산 분할 비율 65 대 35 등의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자 최태원 회장 측은 즉각 반발하며 입장 자료를 냈다.
최태원 회장 변호인단은 "(재판부는) 이번 설명자료에서 최태원 회장의 주식상승비율 기여 기간을 2024년 4월까지 26년간으로 늘리면서 160배 증가한 것으로 기술했다"며 "항소심 재판부가 이러한 논리를 견지하려면 판결문을 2024년까지 비교 기간을 늘리도록 추가 경정을 할 것인지 궁금하며, 이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또 변호인단은 "재판부는 실질적 혼인 관계는 2019년에 파탄이 났다고 설시한 바 있는데, 2024년까지 연장해서 기여도를 재산정한 이유도 궁금하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최종현 선대회장의 기여 기간인 1994년 11월부터 1998년 5월까지를 125배 상승, 이후 최태원 회장의 기여 기간인 2009년 주식 상장까지는 35.6배 상승한 것으로 분석했으나, 이번 설명자료에서는 최태원 회장의 기여 기간을 2024년 4월까지 26년간으로 늘리면서 160배가 증가한 것으로 기술했으니 이 또한 수정 대상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오류 전 12.5대 355를 기초로 판단했던 것을 125대 160으로 변경했음에도 판결에 영향이 없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가 최종현 선대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주식 가치 기여분을 '125배 대 35배'로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최태원 회장 경영 시기의 주식 가치 증가가 컸음을 강조한 판결 내용과 배치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기여 기간을 억지로 늘려 '125배 대 160배'라는 새로운 비교를 제기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이 SK 주식 가치 증가에 크게 기여하기 어려운 '승계상속형' 사업가라는 최태원 회장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최태원 회장이 SK그룹을 경영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에도 SK그룹이 크게 성장했다는 점을 들어 '자수성가형' 사업가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한편, 재계에서는 항소심 재판부의 오류가 법조판 '팻 핑거(Fat Finger)'라는 얘기도 나온다.
'팻 핑거'는 증권시장에서 거래 담당자들이 자판보다 굵은(fat)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다 거래량이나 가격 등을 잘못 입력하는 실수를 의미한다. 2013년 한맥투자증권 파산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경정으로 인해 재산 분할이 크게 달라진다고 판단할 경우 파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경정으로 인해 파기된 판례를 살필 필요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1970년 광부인 원고가 사고로 잃은 상실수익금과 관련해 대한석탄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대표적이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가 상실수익산정액을 잘못 기재했고, 대법원은 "상실수익액산정에 오산이 있다면 재산상 손해금에 관한 판결결과에 영향이 있다고 볼 것이며 단순히 판결 개정사항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박근우 기자 lycaon@greened.kr